냉전의 고민이 2026년에 터져나왔다
지난 6월 유로새토리 국제 육상 방위 전시회에서 이례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비티움, 탈레스, L3Harris 같은 주요 방위업체들이 거의 동시에 비슷한 물건을 내놨다. 네트워크형 인터콤 시스템. 차량 내 음성 통신을 전술 네트워크와 묶는 기술이다. 따로따로 나왔으면 그냥 신제품 발표겠지만, 경쟁사들이 같은 시기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건 다르다. 산업 전체가 한 가지를 깨달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깨달음의 핵심은 단순하다. 차량은 더 이상 혼자 싸울 수 없다.
왜 지금,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전통적으로 군용 차량의 인터콤 시스템은 진짜 고립되어 있었다. 폐쇄된 아날로그 루프로, 차량 탑승 승무원들끼리만 통신했다. 반경 몇십 미터 밖의 하차 보병? 차량이 가진 센서 정보? 다른 차량의 상황? 모두 별개였다. 통신하려면 무선기를 꺼내서 따로 주파수를 맞춰야 했다. 냉전 시대엔 그래도 괜찮았다. 선형 전선, 예측 가능한 적, 천천히 의사결정하는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 전장은 다르게 작동한다. NATO와 미군이 부르는 '다영역 작전(Multi-Domain Operations)'에선 하나의 전투가 동시에 여러 지점에서, 여러 자산으로 벌어진다. 드론이 정보를 주고, 차량이 기동하고, 보병이 지상에서 반응한다. 이 셋이 실시간으로 상황을 나눠야만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낡은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기술이 따라왔다. IP 기반의 분산 디지털 음성 서비스가 가능해졌고, 단일 네트워크 인프라 위에 음성과 데이터를 동시에 태울 수 있게 됐다. Shephard Media의 취재에 따르면, 이제 차량 승무원과 하차 보병, 광범위한 군 집단이 실시간으로 연결된 단일 통합 네트워크 내에서 작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술 혁신과 작전 필요성이 만났고, 산업이 응답했다.
승무원과 보병이 같은 망에서 본다는 건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뭐가 달라지는가. 비티움 전술통신 전문가 제품 관리자 사미 페소넨은 한 문장으로 정의했다. "차량이 네트워크의 하나의 노드가 된다는 뜻이다. 더 이상 고립된 플랫폼이 아니다."
현재 벌어지는 변화를 구체적으로 따라가보면 이렇다. 차량 근처의 하차 보병이 동일한 전술 네트워크에 접근하면, 차량이 포착한 적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본다. 반대로 차량의 센서가 보병이 놓친 위협을 감지하면, 그 정보가 보병의 귀에 즉시 들어온다. 데이터와 음성이 같은 디지털 채널을 쓰므로 지연이 거의 없다. 2025년 3월 탈레스가 출시한 업그레이드 버전엔 AI 기반 노이즈 억제 기능까지 붙어, 전장의 소음 속에서도 명확한 음성 전달이 가능해졌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전쟁에서 정보는 시간이다. 적의 위치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오류로 인한 아군 피격을 막는 것과 막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곧 생사의 차이다. NATO 회원국들이 네트워크 중심 전쟁 교리에 경도되고, 미군이 이동 중 통신 능력 강화에 파일럿 프로그램을 돌리는 이유는 이 기술이 실제로 전투 효율을 올린다는 걸 느껴봤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
누가 웃고 누가 우려하는가
이 변화의 수혜자는 명확하다. NATO 회원국 군부, 미군, 그리고 방위산업체들이다. 국방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거대한 시장이 열렸다. 하차 보병 통신 시스템 시장 규모가 2024년 USD 3.12 billion에서 2031년 USD 6.38 billion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연평균 10.7% 성장이다.
다만 나는 이 기술의 어두운 면도 봐야 한다고 본다. 모든 정보가 한 네트워크에서 흐른다는 건, 그 네트워크가 끊기거나 해킹되면 광범위한 피해가 생긴다는 뜻이다. 전자전 능력을 가진 적국은 통신을 교란하거나 위조된 정보를 주입할 수 있다. 높은 기술 의존도는 전장의 복잡성을 높인다. 무언가 고장 나거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구 체계처럼 단순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과 보병의 실시간 정보 공유가 전술 승리를 거뒀지만, 같은 나라가 전자전 능력으로도 입증된 만큼 양쪽 모두의 시나리오를 생각해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표준화다. NATO 표준(STANAG)을 맞추려면 기술 개발비가 어마어마하다. 국방력을 강화하려는 국가들 중 개발도상국은 이런 시스템을 쉽게 도입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결국 기술이 강한 국가와 약한 국가 간의 군사력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확인된 것과 아직 모르는 것
현재 상황을 정리하자면, 기술은 이미 나왔다. 2026년 6월 탈레스는 협력 전투를 위해 설계된 4 TROOP 전술 차량 프로토타입을 공개했고, 같은 달 L3Harris는 단일 장애점을 제거한 MC-3000I 모바일 커맨드 인터콤을 출시했다. 미군은 Capability Set 2025 프로그램을 통해 업계 혁신을 수용하면서 2년 단위로 전술 통신 솔루션을 추가하고 있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실전 배치 일정과 전술 효과에 대한 성능 검증 데이터는 아직 제한적이다. 기술 사양과 보안 수준에 대한 구체적 정보도 공개된 게 많지 않다. 그리고 한국군을 포함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군부의 구체적 채택 계획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NATO 표준에 맞춰야 한다는 조건은 있지만, 각국의 전술 환경과 예산 우선순위에 따라 도입 속도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다음은 어떻게 되나
앞으로 지켜볼 지점은 명확하다. 첫째, 이 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NATO 전역에 확산되는가다. 이미 주요 업체들이 솔루션을 내놨으니 계약과 배치 속도가 중요하다. 둘째, 한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의 군부 반응이다. 북한과의 대면 상황에서 정보 공유 속도의 중요성은 NATO보다 높을 수 있다. 셋째, 전자전과 사이버 공격에 대한 대책이 기술과 함께 얼마나 발전하는가다. 좋은 기술도 적의 교란에 무너지면 소용없다.
내가 보기엔 이번 패러다임 전환은 돌아갈 수 없다는 게 중요하다. 한 번 네트워크 체계가 작동하는 것을 경험한 군부가 다시 고립된 통신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정보 우위의 시대에 통신 고립은 곧 전술적 열위를 뜻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 세계 주요 군부는 이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방위산업체들은 계속 기술을 고도화할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기술의 복잡성과 의존도도 함께 높아진다는 점이다. 단순성의 강함을 버리고 정교함의 약함을 택하는 선택이 맞는지는, 다음 전쟁이 판단할 일이 될 것 같다.
자주 묻는 질문
왜 지금까지 군용 차량 통신이 고립되어 있었나요?
냉전 시대의 전쟁은 선형 전선, 단순한 명령계통, 느린 의사결정 속도로 설계됐다. 차량 승무원끼리만 통신해도 충분했고, 체계가 단순할수록 고장이 적었다. 기술도 당시 수준에선 차량을 네트워크로 묶기 어려웠다. 70년간 이 방식이 변하지 않은 건 ‘작동하는 것을 굳이 손대지 말라’는 보수적 군사 철학 때문이기도 하다.
보병과 차량이 실시간 통신하면 전투에서 구체적으로 뭐가 달라지나요?
정보 공유 속도가 극적으로 올라간다. 차량의 센서가 포착한 적 위치를 보병이 즉시 본다. 보병이 발견한 위협을 차량이 즉각 감지한다. 이전엔 무선기를 꺼내고 주파수를 맞추고 보고하는 시간이 걸렸는데, 이제 음성과 데이터가 같은 채널을 쓰므로 지연이 거의 없다. 작은 시간 차이가 생사를 갈라놓는 전장에서 이건 매우 큰 변화다.
이 기술이 NATO 밖의 군부도 채택할까요?
한반도 주변국을 포함한 주요 군부는 결국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보 우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NATO 표준 호환성도 중요해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다만 개발도상국이나 기술 수준이 낮은 국가들은 높은 도입 비용 때문에 채택이 지연될 수 있다. 결국 기술 격차가 곧 군사력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네트워크 체계가 해킹이나 전자전 공격에 취약하지 않나요?
맞다. 모든 정보가 한 네트워크에서 흐르면 그 네트워크가 교란되거나 해킹되면 광범위한 피해가 생긴다. 전자전 능력을 가진 적국은 통신을 막거나 위조된 정보를 주입할 수 있다. 기술이 복잡해질수록 예상하지 못한 오류 가능성도 높아진다. 단순성의 강함을 버리고 정교함의 약함을 택한 선택이 옳은지는 실제 전쟁이 판단할 일이다.
한국군은 이런 기술을 도입하고 있나요?
현재 한국군의 구체적 도입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북한과의 대면 상황 특성상 정보 공유 속도의 중요성은 NATO보다 높을 수 있다. 미군과의 연합작전 호환성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것 같다.
이 기술이 언제부터 전장에 나타날까요?
이미 프로토타입 단계를 넘었다. 미군은 Capability Set 2025 프로그램을 통해 2년 단위로 솔루션을 추가하고 있으며, NATO 회원국들도 차량 현대화 계획에 이 기술을 포함시키고 있는 중이다. 완전한 배치는 향후 2~3년 내에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