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을 가라앉히지 않고 이기는 법
적함을 격침시킬 필요는 없다. 레이더 하나, 통신 안테나 하나만 날려버려도 전장에는 시간적 기회의 창이 열린다. 미 육군 7보병사단장 겸 다영역사령부-태평양(MDC-PAC) 사령관인 해링턴 소장이 워싱턴 D.C. 컨벤션센터 무대에서 던진 발상이다.
2026년 10월 12일부터 사흘간 열린 미육군협회 연례심포지엄(AUSA) 패널에서, 해링턴 소장과 다영역사령부-유럽(MDC-E) 사령관 카펜터 준장은 처음으로 루카스(LUCAS, 저비용 무인전투공격체계) 자폭드론을 태평양과 유럽 전구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쓸지 공개했다. 질문자는 전문매체 TWZ의 하워드 알트먼 기자였다. 해링턴 소장은 “꼭 함정을 격침시킬 필요는 없다. 특정 시스템만 무력화해도 (아군이 활용할) 시간적 기회의 창이 열린다”고 답했다.
이 발언이 10월 17일 보도된 뒤, 국내에서는 6월 발표된 한국형 루카스(K-LUCAS) 전력화 계획과 10억 원대 단가 논란만 짧게 다시 언급됐을 뿐, 정작 미군이 공개한 실제 교전 개념 — 미션 킬, 이동식 발사대 타격, 발사효과 통합운용 — 은 소개되지 않았다. 이 교리가 왜 지금 공개됐는지,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부터 짚을 필요가 있다.
모델링과 실전 사이, 검증되지 않은 한 문장
해링턴 소장의 설명은 확정된 전술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가 내세운 근거는 모델링 결과, 즉 워게임이나 시뮬레이션이라는 설명뿐이다. 실제 대형 전투함을 상대로 검증된 전과가 아니라는 뜻이다.
루카스는 실전 이력이 있다. 2026년 2월 28일 ‘이픽 퓨리 작전’에서 대이란 타격에 투입됐고, 중부사령부 쿠퍼 제독은 “루카스는 필수불가결하다”고 평가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사로닉사의 코르세어 무인수상정(Saronic Corsair USV) 3대가 이란 반다르아바스 해군기지의 잠수함·정비시설을 타격해 미군 최초의 무인수상정 실전 사례를 남겼다. 다만 이 모두는 지상 시설이나 정박 중인 표적을 상대로 한 것이지, 기동하는 대형 전투함의 레이더나 통신 체계만 골라 무력화한 사례는 아니다. 미션 킬 개념이 실제 해상 교전에서 입증된 적은 아직 없다.

숫자가 빠진 교리
패널에서 두 장성이 가장 아낀 건 숫자였다. 몇 대를 확보할지, 언제까지 배치할지, 예산은 얼마나 들지 — 해링턴 소장도 카펜터 준장도 “모델링했다”, “선호한다”는 개념적 언급에 머물렀다. 저비용 대량 타격이라는 구상은 선명했지만, 그 구상을 현실의 조달 계획으로 바꿀 구체적 좌표는 공개되지 않았다.
대조적으로 민간기업 쪽 숫자는 선명하다. 코버넌트 앤섬(Covenant Anthem)은 2026년 8월 모로코 탄탄 실사격 시험까지 누적 200회 이상 시험비행을 거쳤고, 1억 5천만 달러 규모 수주를 이미 확보했다. 육군 장성들의 입에서 나온 전략적 언어와 스타트업들의 보도자료에서 나온 구체적 숫자, 이 비대칭이야말로 이번 AUSA 무대의 실제 구도다.
이름이 사라지면 분류도 사라진다
루카스와 코르세어 무인수상정, 앤섬 미사일은 쓰임새도 발주처도 다르다. 그런데 패널에서는 이 셋이 발사효과(launch effects)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여 설명됐다. 장거리 일회성 공격드론과 전통적 순항미사일, 디코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흐름일 수 있다. 이 구분이 흐려지면 예산 항목을 어디에 잡을지, 수출통제를 어느 기준으로 적용할지도 함께 모호해질 가능성이 있다. 아직은 가능성 수준의 관찰이지만, 획득 체계와 수출승인 절차가 명확한 경계 위에서 작동해온 무기체계라는 점을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변화는 아니다.
한국이 받아든 건 교리가 아니라 영수증
한국 국방부는 2026년 6월 이란전에서 실전 입증된 루카스를 본떠 K-LUCAS 조기 전력화 계획을 내놓으며 2030년까지 2만여 대의 저가·소모성 드론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해안포·미사일정·이동식 발사대를 겨냥한 비대칭 타격 수단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번 AUSA 발언은 그 구상의 실제 운용 밑그림을 보여준다. 카펜터 준장이 “이런 체계를 선호하는 이유는 전자기 간섭에 강하고, 사거리가 길며, 위력이 커서 SS-26, SS-21 같은 체계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대목은, 이스칸데르-M(SS-26 스톤), 토치카(SS-21 스캐럽) 같은 북한의 이동식 탄도미사일을 발사 전에 찾아 때리겠다는 한국군의 킬체인 구상과 사실상 같은 문제를 겨냥한다. 해링턴 소장이 설명한 미션 킬 개념 역시 북한 해군 전력의 레이더·통신만 무력화해 한국 해군이 움직일 시간을 벌어주는 방식으로 치환될 수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미군 루카스는 대당 3만 5천 달러로 알려졌는데, K-LUCAS는 대당 약 10억 원(환산 시 70만 4천 달러 수준)으로 보도됐다. 같은 설계도에서 출발해 20배 가까운 격차가 벌어진 셈이다. 국내 매체 비즈한국은 이미 이 가성비 실패를 지적한 바 있지만, 이번 AUSA에서 미군이 공개한 저비용 대량이라는 실제 운용 철학과 나란히 놓고 보면 그 격차는 숫자 이상의 질문을 던진다. 2만여 대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 단가 10억 원 기준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 아니면 수량이 먼저 깎일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교리 공개가 노리는 건 적이 아니라 의회와 동맹의 지갑이다
필자는 이번 AUSA 발언의 1차 수신자가 이란이나 중국, 러시아가 아니라 미 의회 예산 담당자와 동맹국 조달 담당자라고 본다.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패널이 내놓은 내용은 전술 교리치고는 이례적으로 숫자가 없다. 몇 대를, 언제까지, 얼마에 배치할지는 빠진 채 개념적 언어만 반복됐다. 둘째, 같은 무대에서 스타트업 코버넌트의 앤섬은 200회 이상 시험비행과 1억 5천만 달러 수주라는 구체적 숫자로 소개됐다. 장성들의 모호함과 업체들의 구체성이 나란히 배치된 구도는, 이 패널이 실전 지침서라기보다 다음 예산 주기를 겨냥한 홍보 무대에 가깝다는 쪽으로 저울을 기울게 한다.
내 판단이 틀렸다면, 그건 미션 킬 개념이 머지않아 실제 해상 교전에서 입증되는 사례가 나오거나, 육군이 조만간 루카스·앤섬·코르세어 무인수상정에 대한 구체적 소요·예산 수치를 공개할 때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 둘 중 어느 쪽도 없다.
지켜볼 세 가지
- 하이브마인드 자율비행체계(Shield AI Hivemind)를 탑재한 루카스의 군집비행 실전·대규모 실사격 시연 공개 여부 — 2026년 말부터 2027년 초 사이. 공개되면 미션 킬 개념이 시뮬레이션을 벗어나는 첫 신호가 된다.
- 코버넌트 앤섬이 미 육군 정식 획득 프로그램으로 전환되고 독일 라이프치히 생산라인이 가동되는지 — 2027년 중. 전환되면 발사효과 범주가 예산 항목으로 굳어지는 계기가 된다.
- K-LUCAS의 단가·국산화 진척과 2030년 이전 조기 전력화 일정의 구체화 — 2027~2028년. 단가가 10억 원대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2만여 대 목표 자체가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대표 사진 — 미 육군 · NAVCENT
본문 사진 — 미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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