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시간 날아본 기체가, 한 번도 날지 않은 설계에 시간을 벌어주다
7개월 전 독일 라인메탈 CEO 아르민 파퍼거는 보잉 디펜스 오스트레일리아와 손잡고 ‘보잉 MQ-28 고스트 배트(Boeing MQ-28 Ghost Bat)’를 독일 연방군에 맞게 바꾸는 작업에 들어간다고 했다. 수익 전망치는 3자리수 백만 유로대, 그러니까 수억 유로 단위였다. 10월 들어 그 계획은 조용히 사라졌다.
독일 국방부가 보잉에 통보한 내용은 간단하다. MQ-28을 직접 사오는 방식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처음 보도했고, 보잉은 미국 군사전문매체 브레이킹디펜스에 사실을 확인해줬다. 독일은 2029년까지 협동전투기(CCA·Collaborative Combat Aircraft)를 유럽 최초로 전력화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던 나라다. 그 목표는 이제 2030년대 초반으로 밀렸고, 비행시험 시작은 2027년으로 잡혔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한다. MQ-28은 2024년 10월 기준 블록1 8대로 100시간 이상(블록1 8대) 비행시험을 마친, CCA 후보 중 가장 비행 경험이 많은 설계다. 반면 독일 경쟁 구도에 뛰어든 헬싱 CA-1 유로파(Helsing CA-1 Europa)는 아직 한 번도 날지 않았다. 에어버스-크라토스 U740 발키리(Airbus-Kratos U740 Valkyrie)는 10월 12일 유럽에서 첫 비행에 성공했지만, 유럽형 임무체계는 아직 탑재조차 안 됐다. 가장 준비된 선택지가 뒤로 밀리고, 덜 준비된 선택지들이 시간을 번 셈이다.
독일이 ‘원칙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할 때
독일 국방부가 내놓은 설명은 설명이 아니다. 국방부 대변인은 “원칙적으로, 그리고 구체적 사안과 무관하게 잠재적 조달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조달 및 공공계약법 규정과, 해당 사안이 먼저 의회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요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달 절차상 통상적인 비공개일 수도 있고, 밝히기 곤란한 정치적 판단을 가리는 방패일 수도 있다. 지금으로선 둘 다 가능하다.
확실한 건 설명을 거부한 순간 해석의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보잉은 이유를 묻는 질문을 통째로 독일 국방부로 떠넘기고 “다음 단계에서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 냈다. 결정의 당사자 둘이 모두 침묵하면,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언론과 경쟁사의 추측이다. 이번 경우 그 추측의 최대 수혜자는 헬싱과 에어버스다.
라인메탈의 3월 발표가 10월에 없던 일이 된 사정
직구매가 사라지면서 가장 타격이 큰 쪽은 라인메탈이다. 3월 파퍼거 CEO는 “보잉 디펜스 오스트레일리아와의 협력을 통해 MQ-28을 독일 연방군 요구에 최적화할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히며, 라인메탈의 수익 잠재력을 3자리수 백만 유로대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단독 체계통합자 지위를 전제로 한 숫자였다. 직구매가 경쟁 입찰로 바뀌면 이 지위는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다. 라인메탈이 통합 파트너 자리를 지킬지, 헬싱이나 에어버스 쪽으로 판이 넘어갈지는 지금 단계에서 누구도 확답할 수 없다.
이 구도를 한국 쪽에서 보면 체감 온도는 낮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케이에프(KF)-21 보라매’를 중심으로 중형 무인전투기 무카(MUCCA), 소형 무인기 수카(SUCA)를 엮는 유무인복합체계(MUM-T)를 독자적으로 밀고 있고, 지난해 에어쇼에서 1대-4대-8대 편대 구상을 공개한 바 있다. 보잉이 독일과 일본 양쪽에 MQ-28을 동시에 제안하는 상황은 이 분야 수출 경쟁의 온도를 보여주는 참고 사례이지, 한국이 지금 당장 셈에 넣어야 할 사업은 아니다. 직접 영향은 크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독일은 속도를 포기한 게 아니라 산업 레버리지를 택했다
필자는 이번 철회가 ‘기술 평가에서 밀려서’가 아니라 ‘산업정책적으로 유리해서’ 나온 결정에 가깝다고 본다.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MQ-28은 기체 성숙도에서 경쟁기종을 압도한다. 100시간 비행시험 대 0시간 비행시험을 놓고 기술 평가로 밀렸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둘째, 독일은 이미 미래전투항공체계(FCAS·Future Combat Air System)라는 범유럽 유인전투기 사업이 좌초하는 걸 지켜본 나라다. 자국·유럽 산업기반 없이 외산 완제품을 통째로 들여오는 선택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이미 학습했을 가능성이 크다. 직구매를 접고 헬싱·에어버스까지 끌어들인 경쟁 체계로 바꾼 건, 속도를 늦추더라도 누가 체계통합자가 되든 독일·유럽 산업이 지분을 갖게 만들겠다는 계산으로 읽힌다.
다만 이 판단이 틀렸다면, 그건 독일 국방부가 실제로는 MQ-28의 어떤 기술적 결함이나 수출통제 조건을 발견했는데 그것만 비공개로 처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공개된 자료로는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원래 직구매 계획의 기체 수나 예산 규모조차 공개된 적이 없으니, 철회의 ‘진짜 이유’는 지켜봐야 할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
지켜볼 것
- 독일 국방부의 공식 CCA 경쟁 절차(RFP) 발표 — 2027년 비행시험 개시 전후로 나올 가능성이 크며, 이 경쟁의 설계 방식 자체가 ‘산업 분배용’인지 ‘순수 성능평가용’인지를 가늠할 단서가 된다.
- 라인메탈이 MQ-28 외 다른 기종과 새 파트너십을 맺는지 — 2026년 말에서 2027년 사이 나올 경우, 라인메탈이 이미 승부를 다른 쪽으로 틀었다는 신호다.
- 독일의 F-35A·유로파이터 타이푼(Eurofighter Typhoon) 추가 발주 여부 — 2027년 예산 심의 시점에 나오면, FCAS 공백과 CCA 지연을 동시에 메우려는 임시방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독일이 MQ-28 자체를 CCA 사업에서 완전히 배제한 건가?
그렇지 않다. 미국 군사전문매체 TWZ는 이번 결정이 MQ-28을 사업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며, 향후 경쟁 절차에서 다시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의 CCA 전력화 목표는 정확히 얼마나 늦춰졌나?
원래 목표는 2029년이었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수정된 목표는 2030년대 초반이다. 비행시험은 2027년 시작될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이 직구매를 철회한 공식 사유는 무엇인가?
독일 국방부는 구체적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국방부 대변인은 조달 및 공공계약법 규정과 의회 사전 보고 의무를 이유로, 원칙적으로 조달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만 밝혔다.
대표 사진 — 미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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